나노하 FF-2. 마왕이 깨어날 때(6)

초고층 빌딩의 옥상의 헬리포트에서 장대한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는 것도 제법 괜찮은 일 중 하나다, 라고 바이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다만 얼마 뒷면 깔끔하게 정리된 도시구획의 야경이 아닌 불꽃이 치솟는 전쟁터의 야경으로 바뀌긴 하겠지만.

 

현재 바이스를 비롯한 항공마도사대 전력의 절반은 시공관리국 지상본부에서 정확히 400M 떨어진 대형 은행 건물 위쪽에서 대기중이었다. 슬슬 ‘봉화’가 피어오를 시간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예정보다는 조금 늦어지는 모양이었다. 뭐, 뭐든지 딱 맞게는 돌아가지 않는 법이다. 15분 이내로만 실행된다면 그 정도는 충분히 허용 범위 내이다.

 

하지만 벌써 7시간째 대기였기에 서서히 긴장이 풀리고 졸음이 몰려올 지경이었다.

 

“여, 스바루, 넌 인명구조를 한다더니 뭐하러 다시 이 동네로 온거냐?”

바이스가 지겨운 얼굴로 콧구멍을 후비적거리다가 옆에서 마찬가지로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스바루에게 물었다. 스바루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더니 씩 웃으면서 가볍게 대답했다.

 

“나노하씨가 부르셔서요.”

 

“…그거 무지 쌈빡 담백한 이유구만. 아니, 너무 당당해서 오히려 뭐라고 태클을 걸어야 할지를 모르겠는걸?”

 

“하하하, 농담이에요.”

 

스바루가 즐거운 듯 웃었다. 하지만 금세 웃음을 그치고 무릎을 끌어 앉으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글쎄요, 그 이유도 있지만…아마 바이스 씨랑 비슷한 이유 아닐까요?”

 

“내 이유?”

 

“네.”

 

“그게 뭔데?”

 

“일부러 모르는 척 하시는 건가요?”

 

“내가 먼저 물었어.”

 

바이스가 능글맞게 미소를 지으면서 스바루를 바라보았고 스바루는 약간 뾰로통해진 얼굴로 바이스를 째려보다니 한숨을 내쉬고서는 간단히 설명했다.

 

“싸우고 싶잖아요.”

 

“…….”

 

“바이스 씨도 그리우신 거잖아요, 그 손맛이. 적을 꿰뚫고, 부수고, 짓밟을 때의 그 짜릿한 그 맛이 미칠 듯이 그리워서 견딜 수가 없더라구요. 저도 원래는 기동 6과는 통과 지점 같은 것이고 언젠가는 인명 구조를 위해서 일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꾸욱.

 

마하칼리버를 낀 손가락을 차례로 접어 주먹을 쥔 스바루는 흥분감으로 서서히 올라가는 목소리로 바이스에게 말했다.

 

“아무리 사람을 구조해도, 아무리 위험한 상황을 맞이해도 따분하기만 했어요. 분명히 집중하지 않으면 실패할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계속 ‘그 때의 그 맛을, 그 때의 그 느낌을 원한다고’ 몇 천 번이나 속으로 중얼거렸는지 몰라요. 아마, 나노하 씨도 비슷한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나노하 씨는 ‘친해지겠다’고 하시지만…결국 나노하 씨도 원하시는 거에요. 머리로는 이건 미친 짓이라고 알고 있지만, 안되더라구요. 몸이 너무나도 원해요. 특히 언니랑 싸울 때는 정말 최고였는데.”

 

주욱.

 

스바루의 입꼬리가 말 그대로 입 끝까지 찢어지며 쫙 올라갔다. 예전보다는 조금 그을린 듯한 얼굴과 대비되는 새하얀 치아가 드러나면서 선명한 색감을 드러낸다. 스바루는 검붉게 충혈 된 눈동자로 마하칼리버만을 바라보며 히죽히죽거렸다.

 

츄릅.

 

살색의 혀가 나와서 스바루의 말라버린 입술을 훑고 다시 미소를 짓고 있는 입 안으로 들어간다.

 

“부수고 싶어, 꿰뚫리고 싶어, 싸우고 싶어, 죽이고 싶어, 이기고 싶어, 지고 싶어, 부수고 부숴지고 망가트리고 망가지고 죽이고 죽고 범하고 범해지고 불태우고 불타고 쫓고 쫓기고 죽이고죽고죽이고죽고죽이고죽고죽이고죽고…….”

 

“미쳤구나, 너.”

 

옆에서 바이스가 질렸다는 목소리로 끼어들자 갑자기 스바루는 마하칼리버를 바라보며 중얼거리던 것을 뚝 멈췄다. 그리고는 천천히 기계와 같은 동작으로 고개를 돌려 바이스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리고 소녀같은 천진난만한 미소를 생긋 지으면서 바이스에게 물었다.

 

“바이스 씨는 아니세요?”

 

“나?”

 

바이스가 자신을 가리키면서 되물었다. 스바루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이스 또한 즐거운 듯 웃음을 지으면서 상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닐 리가 있나.”

 

 

 

“마침 좋은 때에 반란을 일으켜줘서 다행입니다. 일정 이상의 피해를 각오해야 하긴 하겠지만 이것으로 반란분자들을 일소할 수 있을 겁니다.”

 

크로노가 평탄한 목소리로 눈앞의 영상들에게 말했다. 크로노는 솔직히 진심으로 나노하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나노하도 나노하지만 크로노로서는 사사건건 자신과 대립하는 하야테를 제거할 필요성을 최근 대단히 느끼고 있었다. 보수적인 의회와 군 상층부는 자신을 지지하고 있었지만 성왕교회와 페이트, 나노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하야테는 함부로 무시할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하야테는 지상본부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제아무리 시공관리국 본국이 지상본부보다는 상위에 존재하는 기관이라고는 해도 어차피 반독립적 상태였던 데다가 재정적으로도 더 풍족했기에 권력의 정점을 노리고 있는 크로노에게는 대단한 위협이었다.

 

[흠, 현재 14척의 군함을 2진으로 출발시켰네. 자네보다 3시간 정도 늦게 도착할 것이라고 예상되네. 뭐 현재의 전력만으로도 압도적이긴 하지만 만에 하나란 게 있으니까 말이야. 무엇보다 현재 예상되는 자네의 적은 죄다 S급 이상의 괴물들이니 조심해서 나쁠 거야 없지.]

 

“감사드립니다, 중장.”

 

크로노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예를 표했다.

 

[아니아니, 고마워 할 필요는 없네. 자네가 여태까지 우리 시공관리국을 위해서 해준 일에 비하면 이정도야 솔직히 아무것도 아니지. 게다가 아무리 시공관리국이 나태해졌다고는 해도 저런 악마 같은 계집년들에게 휘둘리는 사태는 정화해야하고 말고.]

 

이번에는 노쇠함을 숨길 수 없는 목소리가 대답했다. 실리어스 원수. 80이 넘은 고령이지만 아직까지도 탐욕스럽게 권력을 추구하는 늙은 뱀이다. 완고하고, 권력을 가졌으며, 지독하다고 할 정도로 남녀차별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는, 어리석은 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야 말로 크로노에게는 꼭 필요한 인재였다. 물론 자신의 목적만 완수된다면 제 일순위로 제거해야 할 인물이기도 하지만.

 

“물론입니다. 시공관리국은 전 차원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서라도 분란의 씨앗이 될 만한 요소들은 미리 다 제거를 해 두어야 합니다. 앞으로 약 한시간 뒤에 도착 예정입니다. 새벽 즈음에는 낭보를 접하실 수 있을 겁니다.”

 

[기대하고 있겠네, 하라오운 ‘최고’집무관]

 

[그럼 이만 해산하도록 하지.]

 

지잉, 지잉.

 

차례차례로 영상들이 사라졌다. 하지만 한 영상은 끝까지 남아서 크로노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그 침묵을 잠시 대하던 크로노는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뭔가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크로노…정말로, 그 아이들을….]

 

“페이트는 가급적 살려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 아이는, 멍청하니까 스스로 뭘 하려 들지는 않을테니까요. 앞으로 저에게도 필요한 인재이기도 하니….”

 

[…다른 아이들은 어쩔 셈이니?]

 

"죽일겁니다."

 

크로노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실제로 그는 그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거리낌이나 문제 의식 같은 것은 없었다.

 

“원래부터 방해였을 뿐더러 이젠 명백한 반역자입니다. 아마 진압 도중 사망할 겁니다.”

 

[크로노!!]

 

린디는 견디지 못하고 크로노에게 비난 섞인, 울음 같은 외침을 내뱉었다. 하지만 크로노는 냉정한 눈동자로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싸늘하게 말을 이었다.

 

“나노하는 반드시 죽일 겁니다. 그녀는 너무 위험합니다. 그리고 하야테는…솔직히 말씀드리죠. 방해입니다. 죄는 없을지 몰라도 그녀의 사상과 행동은 시공관리국의 유지에는 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슬슬 퇴장해야 합니다.”

 

[크로노, 제발!! 제발 부탁이야!! 하야테만은, 하야테만은 살려주렴. 그 아이에게는 아무런 죄도 없단다. 너도 알잖니…그러니까….]

 

린디가 영상 너머로 흐느끼며 너무나도 변해버린 아들에게 애원했다. 크로노는 잠시 말없이 그런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두 모자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린디의 흐느낌만이 아무런 소리도 없는 공간의 적막을 깨뜨리며 들려올 뿐이었다. 잠시 뒤, 크로노가 변하지 않은 차가운 목소리로 린디에게 물었다.

 

“살아만 있으면 됩니까?”

 

[…무슨….]

 

“살아서 어머니께 넘겨드리기만 하면 되는 게 조건이라면 가급적 죽이지 않도록 해보겠습니다.”

 

[크로…노…?]

 

“그녀를 잡는다면 팔다리 힘줄을 끊고, 눈을 뽑고, 혀를 자르고, 정신이 붕괴될 때까지 범하고 고문하겠습니다. 그녀가 현재의 그 당당한 모습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망가져도 어머니가 돌보시겠다면 살려주겠습니다. 어쩌시겠습니까?”

 

린디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오열을 터뜨렸다. 자신의 아들이, 자신의 손이 전혀 닿지 않는 지옥의 강 저편으로 건너가 버렸다는 사실을 이제야 실감한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가혹한 조건에도 그녀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알프.”

 

“네, 주인님.”

 

린디의 영상이 사라진 뒤 크로노가 조용히 부르자 등 뒤의 어둠에서 알프가 솟아나듯이 스윽 나왔다. 어린아이의 모습이 아닌, 예전의 위험한 분위기가 풍기는 야수적인 성인 여성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눈동자에는 이미 생기도, 의지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페이트를 찾아서 데리고 와라. 반항한다면 팔다리 한두개쯤은 부러뜨려도 상관없어. 나노하나 하야테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도록.”

 

“네, 주인님.”

 

알프가 멍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정중히 허리를 굽히더니 사라졌다.

 

“리제리아, 리제롯테.”

 

“응.”

 

“왜 그래, 주인님?”

 

내내 크로노의 의자 양 옆에서 열중 쉬어 자세로 대기하고 있던 두 사역마가 친근한 목소리로 크로노의 부름에 응했다.

 

“그레이엄의 시체는 확실히 처리했겠지?”

 

“응응, 물론이야. 나와 리아가 다 ‘먹어’버렸는걸.”

 

“…좀 맛이 없긴 했지. 젊었을 적에는 정말로 먹음직스러웠는데 역시 인간은 늙으면 맛이 없다니까.”

 

“걱정마라, 이번에는 신선한 고기들을 줄 테니까 말이야.”

 

크로노가 어렴풋이 미소를 지으면서 다정한 목소리로 응석을 부리기 시작하는 리제롯테에게 말했다.

 

“성왕교회로 가라. 최우선 목표는 카림 그라시아의 제거다. 그리고 성공시는 샤하와 아코스의 생존여부를 파악. 만일 살아있다면 둘 다 제거해라. 가능하다면 타카마치 비비오의 위치 파악과 진격 예상도도 관측해 오도록.”

 

“헤에, 먹어도 되는거야?”

 

“물론이다. 확실하게 심장을 먹어치우도록.”

 

“응응, 그럴게그럴게!”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주인님.”

 

리제롯테는 활기차게, 리제리아는 기품 있게 인사를 하고는 알프와 마찬가지로 어둠에 녹듯이 사라졌다. 그런 그들을 눈으로 배웅하며 크로노는 다시 머릿속으로 현재의 상황과 작전 계획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물론 린디와 눈물어린 호소와 그에 따른 약속 따위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다.

 

“문제는 나노하, 인가….”

 

 

 

시공관리국 지상 본부 3km밖의 어느 건물 옥상.

 

“잘 맞춰야 해, 디에치. 하야테의 집무실은 76층이니까 말이야.”

 

“아, 음…5…4….”

 

“그럼 나도 준비해 볼까….”

 

[Divine Buster Extension]

 

레이징 하트에 선명한 핑크색 문자들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옥상 위에서는 디에치가 자신의 전력을 다해 시공 관리국 지상본부를 요격하기 위해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로 위에서는 나노하가 그 밑에 집결하고 있는 지상본부의 대원들을 일격에 날려버리기 위하여 마력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3…2….”

 

기계적인 디에치의 카운트 다운.

 

“디바인….”

 

절정에 오른 여자와도 같이 홍조를 띄며 마지막 키워드를 외우는 나노하.

 

“1…0!!!”

 

“버스터어어어어어어!!!!!!!”

 

 

일순간, 두 개의 노도와도 같은 마력의 줄기가 뿜어진다.

 

평온한 어둠을 찢어발기며, 아무런 예고도, 자비도 없이 내쏘아진 마력의 폭풍은 거대한 도시에 참혹한 일직선의 흔적을 남기며 순식간에 3km의 거리를 뛰어넘어 목표물에 적중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320층짜리 시공관리국 지상본부 건물에서 폭발과 함께 하늘마저 날려버릴 듯한 시뻘건 폭염이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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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 귀차니즘의 힘으로 내내 안쓰다가 페이트 19금 동인지를 보고 흥이 올라 썼습니다.

그래도 에이포 대여섯장은 썼으니까 봐주세요.

2장은 이제서야 겨우 중반이 된 느낌....아직 정진정명의 마왕님께서는 폭주를 안하셨잖아요.


덧글

  • 불신론자 2008/03/09 15:25 # 답글

    하야테가 왜 죄가 없습니까(!)
    ...이건 장난이구요.
    여튼간에 다들 미쳐있군요?
  • 오렌지군 2008/03/09 15:31 # 답글

    아니에요, 다들 순수한 마음을 가진 죄없는 아이들일 뿐이랍니다!! 그냥 좀 순수한 것 뿐이에요!!
  • Hanasui 2008/03/09 15:35 # 답글

    페.. 펜픽!?
  • 불신론자 2008/03/09 16:01 # 답글

    ...극과 극은 상통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게 그겁니다(...)
  • 미루 2008/03/09 16:47 # 답글

    페이트를 조교하실 예정이시군요?! [...]
  • 카시니츠 2008/03/09 21:28 # 답글

    ...............................아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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