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푼젤의 날개 1권-도바시 신지로의 타협, 그리고 아쉬움

네, 전 이 작품이 나온지도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툰크에서 확인하고서는 질렀습니다. 그리고 오자마자 읽었는데...묘한 기분.

1. 도바시 신지로의 대표작은 역시 문의 바깥입니다. 차라투스트라로 가는 계단은 상대적으로 유명세도 덜하고 아예 중간에 짤린지라....다만 문의 바깥은 애초에 1권으로 끝냈어야 하는 물건을 억지로 늘리다 보니 후속권으로 갈수록 개판이 되죠. 하지만 1권만의 퀄리티는 허술한 마무리만 제외하면 라이트 노벨이라는 장르에서도 최상위권을 달리는 물건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차라투스트라로 가는 계단에서는 1권의 퀄리티에 비해서 2권의 퀄리티가 굉장히 높고 3권도 그럭저럭 읽을만 하지만 연중이 되죠. 아무래도 1권의 임팩트가 지나치게 약했던 게 문제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 이것도 4권에서 아마 완결로 아는데...뭐 그나마 완결이라면 완결이라도 난 게 다행이지만.

2. 전체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한 퀄리티와 짧은 권수, 그리고 낮은 인지도 등의 결과는 도바시 신지로라는 작가의 특성이 꽤나 특이하고,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유감스럽게도 대다수의 라이트 노벨의 소비층이 그 특성과는 그다지 부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도바시 신지로의 작품들의 캐릭터와 설정은 굉장히 제한적이고 좋게 말하면 일관적, 나쁘게 말하면 천편일률적입니다.
여자들은 바뀌지만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니힐하고 감정의 폭이 굉장히 좁으며 도박류를 좋아하거나 강한 습성이 있는 아웃사이더 계열의 캐릭터입니다. 중2병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의외로 감정이입이 잘 되는 것으로 봐서는 같은 오덕 친구가 없는 이상 아무래도 학교 생활에서 소외되기 쉬운 오덕들의 중고등학교 때의 느낌과 비슷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뭐 전 친구는 있었음.

그리고 모든 소설들은 공통적으로 '게임'을 다룹니다.

그것이 폐쇄된 수수께끼의 공간이던, 사회의 뒷면에서 활약하는 거대한 카지노건, 혹은 인류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전사건 모든 것은 게임이며 시스템입니다. 주인공은 극히 제한된 정보만을 가지고 게임을 이겨야 하며 만나는 인간들의 심리를 파악해 내야 합니다. 게다가 그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무엇보다 아군을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도바시 신지로의 작품들의 큰 전제조건 중 하나는 무미건조하고 논리적인(그리고 은근히 밝히는) 주인공과 그 주인공에게 강제적인 구속으로 인해서 묶이게 된, 특이한 능력을 가진 소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 또한 감정을 가지고 있고 육체적인 능력이나 기타 능력으로는 주인공을 훨씬 능가하지만 '게임'의 제약으로 인해서 마지못해 주인공에게 협력을 해야하는 장기말들이기 때문입니다.(문의 바깥은 복합적인 성격이라고 보여지긴 합니다만. 거기서는 이능력은 없지만 남성이 여성에게 있어 절대적으로 우월하고 또한 압도적인 육체적인 폭력을 아예 제외시켜버립니다. 결과적으로는 비슷.)

굳이 하렘이라고 말하자면 하렘이지만 그 상황에 놓인 남자는 항상 심리적 압박감에 괴로워하고 여자들의 대부분은 적대적일 뿐더러 설령 호감이 있더라도 '자신에게 방해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내지는 '호감을 사두면 유리하니까'라는 정도의 이유가 99%. 즉 가장 인기 장르인 러브코메 하렘물과의 거리는 한 5천만광년정도 됩니다.

한 번 봐서는 딱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게임들의 룰과 적군과 아군의 경계조차 애매한 현실, 그리고 그 속에서 마모되어가는 주인공의 인성과 이익과 계산만으로 연결되어 그에게 협력하는 소녀들과의 부대낌. 극한의 상황속에서의 인간관계와 선택 등이 바로 도바시 신지로를 나타내는 말들입니다.

문의 바깥(적어도 1권은)과 차라투스트라의 계단은 도바시 신지로가 자신의 특성을 마음껏 살려내었으며 개인적으로 차라투스트라로 가는 계단 2권에서 일정한 궤도에 올랐다고 보여집니다.

이 스타일은 저라는 개인에게는 굉장히 부합하지만 제 취향에 부합한다는 것은 오오 마이너의 증거(...) 문의 바깥이야 애초에 억지로 스토리를 늘려 놓은 것에 가까웠으나 그렇다 쳐도 차라투스트라의 경우 나름 안정적인 진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3권에서 짤리죠.

그리고 그 결과 도바시가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을 해서 내놓은 것이 이 라푼젤의 날개라고 느껴집니다.

3. 우선 이 물건 역시 게임이라는 스테이지와 감정선이 극단적으로 적은 주인공이라는 것은 여태까지와 비슷하게 진행됩니다. 차라투스트라 때처럼 구속으로 묶인, 언제든지 반항이 가능한 월등한 육체적인 힘을 가진 히로인 또한 비슷합니다. 하지만 크게 다른 점은 게임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메인이었던 문의 바깥이나 차라투스트라와는 다르게 여기서의 게임은 그저 무대 설정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게임이라는 배경을 통한 보이 미츠 걸 류의 소설인거죠.

그래서 소위 말하는 일반적인 라노베들처럼 여태까지의 작품들에는 거의 없었던 히로인의 투정이라던가, 모에한 시츄에이션등이 꽤나 자주 나오고 그와는 반대로 철저했던 게임의 시스템과 설정이 많이 느슨해지고 사사건건 주인공의 발목을 붙잡던 제약들 또한 굉장히 약합니다. 제약들이 전체적으로 단순해진만큼 제재 자체는 강력해지기도 했습니다만(일정한 거리 바깥으로 나가면 사지 구속)그것 또한 이레귤러인 주인공이 데리고 다니면 그만이기에 큰 의미도 없습니다.

즉, 코어한 맛을 버리고 어느 정도 친화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죠.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서 작품 전체에 흐르는, 특정한 사회나 시스템에 대한 적대적인 독기가 굉장히 희석됩니다. 비슷한 장면이라도 차라투스트라때와 이 라푼젤은 '무거움'이 많이 다릅니다. 오히려 피해자의 숫자로만은 라푼젤이 더 많지만 라푼젤은 그냥 '이능력배틀물에서는 당연히 나오는 희생' 정도로 분위기가 많이 격하? 아니 이 경우는 격상인가?

그 결과 오히려 좀 어중간한 작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 제 느낌. 아마 도바시 신지로의 작품들을 읽으시고 좋아하시게 된 분들이라면 다 저와 비슷한 감상을 품고 계실거라고 생각됩니다. 특유의 게임에 대한 집착이라던가 훨씬 더 황량하고 타산적인 관계가 많이 퇴색되고 보이 미츠 걸이라는 주제를 잡은 이상 일정한 선 이상의 믿음이 존재하게 되니 말이죠. 게다가 후반부의 전개의 경우 논리적으로 아주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닌데 게임의 전제 자체가 좀 괴해지는지라....

그렇다고 해서 연애 파트가 엄청 달달하다거나 하고 묻는다면 그것도 절대로 아니고. 뭐 이건 만일 달달했다면 오히려 평가가 더 내려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4. 일러스트로는 시로미자카나씨와 문의 바깥과 차라투스트라에서 호흡을 맞추었는데 이번에는 안녕 피아노 소나타로 유명한 우에다 료씨가 맡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시로미자카나씨의 일러스트가 좀 더 취향이긴 한데(근데 이 사람이 케이온의 애니메이터라는 말이 있더군요. 정보가 너무 적어서 확인은 불가)이 쪽도 나쁘진 않았습니다.

5. 전체적으로 '이번엔 좀 팔리는 물건을 내놓아 보겠다!'라고 작심하고 자신만의 극단적인 스테이터스를 좀 둥글둥글하게 바꾸고 어느 정도 먹힐 물건을 내놓았고 실제로 성적 자체는 그럭저럭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작가 특유의 중2병적인 염세적인 세계관과 황량한 인간관계, 그리고 니힐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성희롱급 발언을 해 대는 주인공과 복잡한 게임 룰 등을 좋아하는 중2병 독자로서는 참 아쉽습니다.
일단 앞으로도 사긴 사겠지만...개인적으로는 문의 바깥 1권의 그 초심으로 돌아가줬으면 하는 작가.(하지만 그럼 안팔리겠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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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eigen 2010/12/18 19:15 # 답글

    제 취향에 잘 맞는 작품같네요. 다만 요즘은 어두운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계열은 좀 피하고 싶으니 패스할 것 같습니다. 이리저리 치이는 생활을 하다보니 제로의 사역마 같은 밝은 작품이 더 읽고 싶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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