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푼젤의 날개 2권-따로따로, 또 같이


1. 사실 주인공을 두 명 이상 잡는 것은 굉장히 까다로운 방식입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순식간에 분배가 흐트러져서 한 주인공은 다른 녀석에 비해서 완전히 공기가 될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아지니 말이죠. 무엇보다 사건축이 두 개로 나뉘기에 어느 한 쪽이고 깊이가 얕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점을 다 뛰어넘을 정도로 엄청난 흡입력을 가진 물건들은 물론 있고 그런 물건들은 명작 소리를 듣지요. 하지만 이 물건은 결국 이야기 축을 한꺼번에 두 개를 유지하는데에는 실패했습니다.

2. 1권에서의 완결성이 상당히 높았던지라 대체 무슨 수로 2권을 이어갈까 했는데 의외로 그 문제 자체는 간단하더군요. 아직 안 끝났어. ....천잰데?
뭐 좀 억지스럽긴 하지만 그건 차치해두고 문제는 그 두 번째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료이치와 나나가 헤어졌다는 점입니다. 즉 사건축이 두 개로 나뉘면서 하나는 나나를 잃고 상실감에 젖은 료이치+나나와 함께 있던 10일간의 회상 파트가 되고 다른 하나는 불완전한 천사들을 키우기 위해서 마련된 두번째 시험장에서 벌어지는 나나의 사투, 두 가지입니다.

사실 나나의 사투 파트도 워낙에 간단간단한 진행이라 도바시의 장점인 복잡한 룰과 그 룰에 병행되는 인간심리의 변동을 표현해내기는 모자랐지만 그래도 일단 기본은 해 줬는데 그보다는 료이치 파트가 심각.

3. 기본적으로 이 작가의 주인공들은 무미건조하고 타인과의 교류를 극단적으로 꺼리는 녀석들입니다. 단순히 중2라고 치부하면 그뿐이지만 그보다는 좀 더 근본적인 면에서 '아웃사이더'라고 할 수 있지요. 다만 이 라푼젤의 료이치는 문의 바깥의 노리유키나 차라투스트라의 후쿠하라에 비해서 큰 차이점이 하나가 있는데 바로 머리회전.
료이치는 노리유키나 후쿠하라에 비해서는 극단적으로 사교성이 바닥은 아니고 어느 정도 일상적인 라인은 유지하고 있지만 반대급부로 이 목숨을 건 도박에는 그다지 어울리는 타입이 아닙니다. 감정 기복이 적긴 하지만 머리회전이 근본적으로 늦어요. 노리유키는 '미움받는 책사'로서, 후쿠하라는 '고독한 도박사'로서의 느낌이 어느 정도 살아 있고 생과 사, 혹은 파멸의 코앞에서조차 활로를 찾아낼 수 있는 녀석들이었다면 료이치는 정말로 평범한 녀석이라는 느낌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감정 기복이 적은 평범한 녀석으로 끝이란 것.

나나를 잃고 쓸쓸해 하는 모습 등이 나오고 나나의 환영을 제시카에게서 찾는 모습 등이 나오지만 딱히 절실하게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그런 애절하고 새콤달콤한 기분은 도바시에겐 무리임. 도바시는 긴장된 상황 속에서 여캐와 성희롱적인 농담을 태연하게 주고받으며 반쯤 헛소리에 가까운 형태로 나약함과 긴장감, 의존감과 공포심 등을 뒤섞어서 내는 특유의 살짝 에로틱하면서도 그리 질척하진 않은 형태의 교차는 정말로 잘 씁니다.(무슨 소리신지 잘 모르시겠지만 솔직히 표현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전작들을 읽어보시라고 밖에는...) 하지만 서로가 상대방을 그리면서 순정적인 모습을 취하는 건 아 그거 무리. 스기이 히카루나 노무라 미즈키면 모를까 도바시는 무리에요.

그러다보니 료이치가 맡는 부분은 아무래도 좀 따분하며 무의미해보인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스토리 진행상 필요한 부분이긴 했지만 역시나 좀....

4. 그런데 그런 료이치에 비해서 제시카랑 미호가 너무 잘 나와서 좌절OTL 이 작가 진짜 차라투스트라 때도 그렇고 '좋아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혹은 해줄 수 없는'캐릭터의 쓸쓸한 마음은 진짜 잘 넣네요.
나나가 미호에게 살짝 키스를 해 주는 씬이라던가 제시카가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는 씬이라던가 등은 아 안습....

5. 뭐 이런 식의 진행이라면 3권에서도 어떻게 해서 또 새로운 게임을 내놓겠죠. 개인적으로 2권 같은 연속적인 단발성 게임보다는 한 권을 통째로 쓰는 게 좋습니다. 1권은 액션이 상대적으로 심심했고 2권은 막판의 액션 묘사는 좀 나아졌는데 게임이 심심했으니 3권은 각각의 장점을 취해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6. 마지막으로 여담인데 역가 후기가 이렇게까지 마음에 안 드는 적도 없는데 말입니다...아니 뭐랄까 일반적으로 역자 후기들은 최소한도로 작품에 대한 감상이나 애정이 보이는데 1권때도 그렇고 2권 와서는 '난 정말 아무 관심도 없는데 일이라서 하고 있음'틱한 역자 후기인지라 웬지 열받음.

PS 2권을 보고 역시 연애 라인은 료이치-제시카, 나나-미호가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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