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사슬-여름의 꿈 같은 납치물

1. 에로게 포스팅을 오랫동안 안 썼는데 이건 시간이 필요한 물건이라 시간이 없는 최근 쓰기가 참 힘들더군요. 그래서 그나마 짧고 간단한 거로. 아 공허하다는 건 이 작품의 분위기가 그렇다는 거지 게임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2. 어설픈 중2병이 든 주인공이 시골에 있는 할아버지 댁에 매년 여름방학때 놀러와서 지내다 할아버지마저 입원을 하자 할아버지가 재미로 파 둔 방공호를 이용해서 여자를 납치해서 조교하기로 마음먹고 실행합니다.

실제로는 택도 없는 어설픈 납치계획이었지만 마침 퍼부은 폭우와 그 때문에 산사태가 일어나서 그 대상이던, 주변의 좋은 학교에 다니며 바이올린을 배우던, 그리고 아주 예전에 같은 반이기도 했던 히로인을 별 탈 없이 납치하고 흔적도 사라집니다.

그리고 납치한 히로인을 방공호인 땅굴에 가두고 조교해 나가는 이야기.

3. 엄밀한 의미에서 납치 조교가 테마에 가깝기 때문에 조교 자체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게다가 주인공이 어마어마한 유리멘탈+찌질 중2라서 뭐 한 번만 실수해도 막 화내고 짜증내고 하는데 아 이 녀석 진짜 중2병이구나...싶어요.

히로인도 싫다고 울부짖고, 반항하고, 체념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의미에서 좌절하진 않습니다. 그녀에겐 바이올린이라는 꿈이 있고 아무리 주인공이 어설픈 조교 지식으로 자신의 인형으로 만들려고 해도 바이올린이라는 지지대가 있는 한 그녀의 영혼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루트가 갈리죠. 실패루트, 육노예루트, 인형 루트. 아 뭐 이름은 임의로 붙인거고 이 셋을 다 깨면 진엔딩 루트가 나옵니다.

각 루트가 개별로서 의미가 있다기 보다는 셋이 합쳐져서 하나가 되어야 의미가 있는지라 그냥 다 까발리고 말합니다.

4. 실패 루트.
히로인을 조교한다고 이리저리 굴리고 해보지만 결국 어설프기만 한지라 뭔가 효과는 애매하지만 스스로는 잘 되고 느끼고 있던 주인공이 음, 상을 줘야지! 하고서는 몰래 그녀의 집으로 가서 그녀의 물품 몇 개를 가져다 주려다 간신히 잡히지 않고 돌아오지만 비를 잔뜩 맞은데다가 하도 긴장해서 그런지 감기몸살에 걸려 방공호로 들어와서 픽 쓰러져버립니다.

그런 그에게 자신의 소지품 속에 가지고 있던 약도 먹여주고 옆에서 조용히 간호해주는 히로인.(목줄로 묶여있어서 탈출은 불가능했음) 그런 그녀에게 차라리 자기를 죽이거나 협박을 하지 않고 왜 그랬느냐고, 이제 진짜로 자기가 좋아졌느냐고 김칫국을 마시던 주인공은 담담한 표정으로 아무리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하더라도 자신의 영혼은 결코 가둘 수 없다고 말하는 히로인. 결국 수치심과 패배감을 이기지 못한 주인공은 그녀를 풀어주고 당연히 체포되어 수감되고 친인척과의 연도 모두 끊깁니다. 그 이후로도 지속적인 감시를 받으며 살던 주인공은 정말로 너무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간단히 자신이 그 당시 얼마나 삐뚤어져있었으며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욕구를 위해서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후회하죠. 그리고 히로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하지만 자신에게는 결단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살아갑니다.

그렇게 이십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택시 운전사로 지내던 그는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바이올리니스트로 찬란한 인생을 살아가는 그녀를 자신의 택시에 태우게 됩니다. 놀라울 정도로 이십년 전의 모습을 간직한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자신의 목적지를 말하고 주인공은 순식간에 그녀를 알아보지만 그녀가 자신을 결코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을, 자신의 시시했던 욕망이 결코 밝게 빛나던 그녀의 영혼을 더럽힐 수 없었음을 깨닫고 조용히 그녀를 목적지까지 바래다주면서 끝.

개인적으로 이 루트를 가장 먼저 봤는데 이거 다른 루트에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덤덤하고 씁쓸한, 어떤 면에서는 거의 인간찬가급의 루트.

5. 육노예 루트.
이 쪽에서는 그녀의 희망의 상징이 바이올린이라는 것을 알고 집요하게 그녀에게 바이올린을 버리거나 부술 것을 종용하지만 그녀는 어떠한 고통을 당해도, 결코 그것만은 버릴 수 없다고 항거합니다. 결국 주인공은 자신의 손으로 그 바이올린을 부숴버리죠. 실패루트에 봤듯이 바이올린=영혼의 자유 그 자체를 상징하던 물건인지라 바이올린이 부숴지고는 그녀는 점점 더 반항심을 잃고 주인공에게 복종하게 되죠. 엔딩에서는 레이프눈인 채로 임신한 채로 주인공을 펠라해주고, 그녀와 자신만이 존재하는 왕국 속에서 주인공은 새로운 노예를 납치감금해서 자신의 이 어두운 토굴 속으로 데려올 생각을 하며 끝납니다.

6. 인형 루트.
이 쪽은 바이올린을 버리게 하지 않고 그녀의 외부에 대한 희망을 차츰차츰 끊어갑니다. 라디오로 자신이 미리 수정한 뉴스를 틀어주고, 비관적인 신문기사만 스크랩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내버려두고, 결국에는 마지막까지 그녀를 찾던 그녀의 부모들이 결국 그녀를 포기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지금 와서 가봤자 자신에게 이렇게 더럽혀지고 이미 죽은 줄 알고 장례까지 치른 히로인이 돌아가봤자 주변 사람들은 부담스러워하기만 할 거라고 그녀를 구슬리죠. 이 루트에서는 육노예루트보다는 훨씬 더 집요하게 그녀를 괴롭힙니다.

특히 육체적으로 점점 더 부자유를 주는데 바이올린을 부수는 대신 그녀의 팔을 괴사하지 않을 정도로만 구속해두죠. 그래서 그녀는 육체적으로 점점 더 쇠약해지고 그러한 상황에서 저 구슬림을 받은 다음 그녀에게 바이올린을 켜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젓가락도 제대로 쥐지 못할 정도로 약해진 그녀는 바이올린을 제대로 켜지도 못하고 활을 떨어뜨리죠. 그렇게 희망이 있어도 너 자신이 그것을 쥘 수 없다는 것을 세뇌당한 히로인은 결국 울면서 스스로 주인공의 노예가 되겠다고 맹세하고 얼핏 보면 순애계에서 첫 H 같은 구도로 주인공과 일을 치룹니다.

그 이후로 마치 누구보다도 빛나던 그녀의 영혼을 통째로 흡수한 것 같이 예전의 어두침침한 성격에서 벗어나서 매사에 적극적이 되고 방치했던 공부도 점점 더 나아져 모 유명한 대학에 합격하고 자취를 하게 된 주인공이 슈트케이스에서 이젠 방긋방긋 웃기만 하고 주인님의 노예라서 행복하다고 기계적으로 답하는 히로인을 꺼냅니다. 여전히 수년전 여름의 그 때와 같은 세일러복을 입고 있고 스물이 넘었어도 교복이 잘 어울리지만 오랜 구속으로 인해 이젠 다리가 거의 마비되어 걷지도 못하고 자꾸 기침을 하면서 나날이 삶의 기력 자체가 줄어가는 히로인에게서 자신은 주인공의 노예라서 행복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주인공은 밝은 미래를 느끼며 엔딩.

조교라는 의미에서는 가장 궁극적인 루트 아닌가도 싶더군요. 상대방의 영혼 그 자체를 삼켜버린 엔딩. 그 과정보다는 엔딩이 저 위의 실패 루트와 가장 대비되면서 달콤쌉쌀하던 엔딩이었습니다.

7. 그리고 이 모든 루트를 끝내고 나면 펼쳐지는 진엔딩이 어떤 면에서는 정점을 찍는데...

그냥 납치에 실패합니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소심 찌질하던 주인공이 애초에 납치 과정에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히로인에게 기척을 들켜서 히로인이 돌아보자 뭐라 몇 마디 중얼거리고 결국 혼자 도망쳐버립니다. 그리고 처음의 그 찌질한 모습 그대로 우울한 청춘을 보내고 별 거 없이 고향에서 적당한 일자리를 얻어 생활하다 십년만의 동창회에 참가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히로인을 만나죠. 유명 바이올리니스트로 성공한 그녀를. 그냥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그의 시선을 깨달은 히로인은 다가와서 십 년 전의 그 때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았느냐고 묻고 주인공은 중언부언하면서 긍정합니다. 그런 짧은 인사가 끝나고 다른 사람이 부르자 '그럼 또 보자'라고 가볍게 말을 남기며 가버린 히로인. 그런 여름의 아지랑이 같은 과거의 모습이 아주 잠시 떠오르고 그 때 실패해서 다행이라고, 이렇게 된 게 당연하다고 독백하면서 안도 반 씁쓸함 반을 남기면서 루트 끝.

8. 사실 에로씬 퀄은 그냥 그렇고 성우도 그렇고 다 그런데...실패 루트와 인형 루트가 스토리적으로 꽤 괜찮은 데다가 그 모든 것이 다 끝난 후 개방되는 진 루트가 묘하게 염세적이기도 하고, 여름의 꿈 같던 그녀와 결국 진정한 길에서는 그 꿈은 그저 과거의 꿈으로 끝나는 모습이라던가는 묘한 씁쓸함을 주는 그런 물건. 아 물론 히로인적으로는 가장 좋은 루트긴 합니다만(...) 우린 보통 주인공을 보잖아.

짧지만 어딘가 아련함을 주는 그런 물건이었습니다. 백프로 만족스럽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닌데, 하고 나서 마치 슬픈 단편이나 탐미주의 소설 읽은 것 같은 그런 느낌. 가볍게 하기 좋으면서 분위기 즐기기도 괜찮은 그런 물건?

덧글

  • 피그말리온 2016/07/08 01:00 # 답글

    진엔딩 전의 엔딩은 일종의 망상이었다...그런 전개인 셈이군요.
  • 벨제브브 2016/07/16 23:38 #

    망상...이라기보다는 평범한 인간이라면 흔히 마지막 루트를 탔을 그런 느낌? 앞의 세 루트는 엇나간 루트이고 아무 일도 없이 그저 여느 여름처럼 지나간 그 것이 가장 올바르면서도 일반적이라는 그런.
  • 라피르 2016/07/08 15:39 # 답글

    와 이거...갓겜이네요. 능욕물이 저렇게 하기가 쉽지 않은데 히로인이 끝까지 버티는 루트 있는 것도 인상적이군요.
    저는 정신적으로 고어한 거 잘 못봐서 플레이는 안 하겠지만...
  • 벨제브브 2016/07/16 23:38 #

    ...좋아하실 것 같은데...
  • 갓겜 2020/08/08 18:26 # 삭제 답글

    조교 누키게에 이 정도의 스토리를 짜 넣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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