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트 아포크리파-저평가받기 너무 아까운 애니

1. 페이트 시리즈 애니도 생각해보면 상당히 쌓였다. 솔직히 잊고 싶은 스튜디오 딘 작품부터 포함해서 아직 보지 않았고 딱히 볼 생각도 없는 헤븐즈 필 극장판까지 여태까지 줄줄이 나왔고 앞으로도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정말로 요상할 정도로 반응도 낮았고 평도 생각보다 낮은 작품이 있으니 바로 페이트 아포크리파.

2. 뭐 사실 인기 없을 요소는 많다.

사실 주인공이 재미가 없다. 이건 꽤나 치명적인 요소다. 물론 아포크리파는 엄밀히 말해서 군상극이다. 적어도 원판 소설은 애니보다는 훨씬 더 군상극에 가까웠다. 애니와 같은 시간의 제한이 없으니 얼마든지 캐릭터에 대해서 설명이 가능하고 약간의 배경지식과 설명을 주기만 해도 상상을 통해 생동감을 얻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애니에서는 좀 더 시선을 지크에게 주는 선택을 했고 이는 애니로서는 타당한 선택임과 동시에 꽤나 치명적인 문제기도 했다. 왜냐하면 지크는 언급했다시피 재미가 없는 녀석이기 때문이다.

지크는 매우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진지하고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해서 살고자 하는 구도자 같은 녀석이지만 보통 시청자가 받아들이기에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알아야 할 것들이 결락되어 있고 진지한 삶에 대한 탐구 또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원래 다 그런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기에 아무리 고뇌를 해 봤자 따분하기만 한 것이다. 그렇다고 잔느나 아스톨포와 꽁냥거리는 게 재밌냐 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으니 이건 뭐 아무리 간을 해도 밍밍하고 뻣뻣하기만 한 녀석이 나온 것이다.

둘째로는 사실 시청자가 문제인 것도 있었다.

사람들에게 가장 인상을 강렬하게 남긴 페이트 제로나 UBW, 그리고 헤븐즈 필까지 전부 다 유포터블에서 맡았는데 유포터블은 쉽게 말해서 매우 샤프하고 선명한 색감을 이용하며 고급 카메라 같은 기법을 많이 쓴다. 간단히 말하자면 때깔만큼은 참 좋은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진짜 병신 애니인 UBW 같은 게 떄깔만 좋다고 양작 이상 취급 받는 건 참 고까운 일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적어도 한국 내에서는, 때깔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칼 같이 날카로운 작화가 인기가 좋다.

그렇지만 페이트 아포크리파는 A-1에서 맡았을 뿐더러 애초에 딱 떨어지는 작화와 이에 어울리는 슬로우 모션은 극도로 배제하고 오히려 속도감과 스케일을 키우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이는 진정한 영웅들의 개싸움판인 아포크리파에는 맞는 선택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젠,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이상하게 유포터블식 연출만이 인정받는 이 바닥에서는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건 시청자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쪽.

3.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포크리파는 장점도 많다.

우리는 성배전쟁이라고 해 봤자 맨날 이레귤러만 잔뜩 발생하고 00년대 어반 판타지에 가깝게 고층건물들의 그림자 사이에서만 싸우는 영우들을 보다가 아포크리파에서는 하나같이 사고뭉치이지만 영웅으로서의 사고방식들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이며(완전히 아웃인 잭더리퍼 정도를 제하고는 대다수가 자신만의 영웅의 기준을 가지고 있고 이에 근거해서 행동한다)그것이 일부분은 같지만 일부분은 완전히 이질적이기에 성배'대전'에 맞게 엉망진창으로 흘러가게 되며 그것이 군상극으로서의 생동감을 부여한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원하는 것이 다르며 전장이 넓기 때문에 연계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나는 아포크리파가 빛난다고 생각한다. 물론 비중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이들도 있지만 서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 성배를 차지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한다, 이것이야 말로 어떤 면에선 페이트 시리즈의 근간인 성배전쟁을 가장 솔직한 방식으로 표현해 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액션씬, 개인적으로 액션씬은 역대급이라고 본다. 페이트 제로의 무협지 같은 액션씬도 좋아하지만 나는 카르나-지크의 대결이라거나 케이론-아킬레우스 대결, 그리고 아마쿠사 시로-프랑케슈타인의 대결도 좋아한다. 여태까지의 페이트 애니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서 '영웅들의 힘'을 정말로 아낌없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맨날 뭐부술까 힘 억제하고 그러는 게 아니라 광활하게 펼쳐진 평원에서 말 그대로 빵빵 다 부숴대는 영웅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 물건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다 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4. 페이트 아포크리파.
아포크리파는 외전이라는 뜻이다. 애초에 페이트 세계의 영령들은 한 사건에서 자신이 어떤 경험을 했더라도 다른 곳에 소환되면 그 기억은 그저 기록으로서만 남을 뿐이다. 
이러한 막강한 자유를 가지고 그 안에서 영웅들이 우리가 이해하기 쉽건 어렵건 자신만의 신념과 욕망을 가지고서 신나게 부숴대고 원하는대로 날뛰는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 만으로도 나는 책도 즐겁게 읽었고, 애니도 즐겁게 봤다.

안 본 사람 있다면 넷플릭스에 있으니까 보라고 해주고 싶다. 

적어도 국내에서의 기묘할 정도로 낮은 평가를 받을 물건은 절대로 아니다. 나로서는 오히려 최고의 자리를 줘야할지 둘째 자리를 줘야할지 고민스러울 정도의 물건이다.

덧글

  • PFN 2018/05/30 00:13 # 답글

    저는 저평가가 매우 정당하고 생각합니다.
    작화 연출 액션 그런거 다 떠나서 캐릭터들이 그냥 폭삭 망했죠.
    다들 어찌다 얕고 평면적이고 저능하고 비인간적인지
    인간이 아니라 설정을 싸질러 놓은 글자 무더기에 더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원 작가 필력이 어찌나 절망적이었던지 이건 캐릭터를 그려내지조차 못하고 찍싼 수준이죠.
    이건 누가 잡았든 간에 진짜로 원작 무시하고 새로 썼어야 가망이 있었으려나 싶습니다.
    그리고 그럴 바에는 그냥 안하는게 제일 나았겠죠.

    그래서 유포터블이 맡는다고 해도 평가가 달라졌을 것 같지 않습니다.
    유포터블이 그렇게 오리지널리티 듬뿍 넣어서 재창조할 양반들은 아닌것 같거든요.

    영웅의 사고방식 이야기는
    아아아...
    그냥 말을 안해야 할 것 같네요.
  • ㅇㅇ 2018/05/30 01:40 # 삭제 답글

    사실 다른 나라에서도 아포크리파 평가가 그리 좋진 않았죠.bd 판매량 같은걸 보면...모드레드와 여제의 결전은 진짜 멋있었고 카르나와의 결전도 그렇고 명장면도 많았지만 그것 만으로는 모자랐나...이게 아무래도 주인공인 지크 때문인거 같아요.아포크리파 리뷰의 태반이 주인공인 지크와 지크를 위한듯한 작위적인 전개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차있죠.주인공인 이상 작품을 대표하고 시청자들과 많은 시간 접촉해야되는데 정작 지크가 나오는 파트를 사람들이 짜증을 느끼고 재미없어 하고 존재자채를 삭제해야 한다는 과격한 발언이 호응받는걸 보면 역시 지크가 아포의 평가를 미친듯이 깍아먹은 일등공신인거 같습니다.아포크리파는 지크를 위한 메리수 소설이라는 평가까지 받으니...사실 지크도 그리 나쁜 캐릭터는 아니고 얘가 최소 주인공이아니라 조연이었으면 이정도로 욕을 먹지도 않고 아포 평가도 좀 올라갔을거 같은데...아포가 끝난 지금까지도 지크는 욕을 먹고 있고...너무 욕을 먹으니 동정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 아인베르츠 2018/05/30 17:50 # 답글

    액션신은 좋아합니다. 특히 카르나전은 감탄할정도였구요.
    지크가 없고 잔느가 혼자 아마쿠사와 인간이란 무엇인가 논하는게 좋았다고 생각할 뿐. 아 거 잔느는 자기가 미래에 화형당해 죽는걸 계시로 알았으면서도 영국에 맞서 싸웠다는데 그런걸 좀 아포에서 풀어줬어야지!!!! ㅂㄷㅂㄷ.
  • 포스21 2018/05/30 21:14 # 답글

    재밌으려나요? 어쨌든 평이 좋으니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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