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바코 극장판-누구를 위한 이야기였을까?

1. 전 시로바코 TVa는 매우 감명깊게 봤습니다. 저 말고도 우주명작 소리 하시는 분 많겠죠. 안 보신 분들 있다면 애니플러스에서 공짜로 풀었던데(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음) 한 번 꼭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2. 자, 하지만 그랬던 시로바코는 사실 굉장히 좋은 지점에서 끝을 맺었습니다. 사람들은 더 훌륭해진, 프로듀서가 된 미야모리의 이야기도 봤음 좋겠다! 했었고 제작진들도 아예 4쿨로 가서 프로듀서로서도 성공하는 먀모리를 그릴까? 하다가 너무 이야기도 길어지고 비슷한 이야기의 반복이 될 것 같다. 해서 그만뒀다고 인터뷰 한 적도 있었죠.

그런 면에서 이번 이야기는...좋은 의미와 안 좋은 의미 양쪽으로 기대를 배신하고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굉장히 뻔하고, 흔하고, 왕도적인 이야기를요.

3. 원작 시로바코가 인기를 얻은 요인 중 하나는 깔끔하게 진행되면서도 중간중간 사회인이라면 속이 꼬일 것 같은 이야기라던가 업계인들이나 이 바닥에 관심을 둔 오타쿠들에게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업계 네타라던가 업계의 불합리라던가 등등등 '공감'을 일으키게 만드는 소재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인기와 인지도를 얻지 못한 밑바닥 성우들이 얼마나 힘든지, 맨 처음 작화팀에 들어가서 얼마나 고되게 일하면서도 자기가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오느지, 제작진행으로서 뼈빠지게 일하는데 맨날 스케쥴은 꼬이고 관계자들은 성질내고 하는지, 하지만 누군가가 도와줄 때 기쁘고 결과물이 잘 나오면 자부심을 느끼고 원했던 일을 자신이 해볼때 얼마나 행복하고 소소한 일조차 같이 의논해서 처리하면 성취감이 느껴지는지 말입니다.

이런 소소한 부분에 굉장히 힘을 기울였기 때문에 시로바코는 우주명작 소리를 듣게 된 것이죠.

4. 이에 비해서 극장판은 정반대의 노선을 취합니다. 작품을 만드는데 얼마나 골치가 지끈거리고 회의를 하고 높으신 분들의 비위를 맞춰야 하고 하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오리지널이라 판권 문제는 없고 발주한 회사에서 타 회사에 맡겼다가 도저히 일이 진행이 안 되어서 원청을 옮긴거라 예산이나 기타 제작 관련 사전 도입부 문제는 없고 마찬가지로 캐스팅이나 제작에 있어서도 전권을 다 가지고 있게 되고 TVA에서 이미 인연을 쌓아둔 캐릭터들이 차례차례 차근차근 나와서 도와주고 올스타 팀을 만들죠.

물론 그 와중에도 각 캐릭터가 자신이 제작자, 창작자로서 가진 고민을 보여주고 각자 성취감 이후의 하락감, 패배감, 조바심 등을 느낄때 이 새로운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동기, 전환점을 만드는 부분은 여전히 제작진이 각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이 시리즈의 강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런 점을 알고서 제작진은 굳이 제작비화나 소소한 깨알 같은 업계 네타 등을 싹 다 빼버립니다.

그리고는 TVA 같은 급박함이나 긴장감 없이, 어떤 면에서는 조금 허망할 수도 있을 정도로 매우 부드럽고 완만하게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끝을 냅니다. 전 솔직히 클라이막스를 보면서 어 이거야? 싶었습니다. 왜냐하면...이건 관객을 향해서 보여주기보다는 제작진들이 정말 스스로를 위해서 만든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거든요.

5. TVA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던 무사애니와 먀모리는 현재 크게 좌절하고 바닥에 처박힌 상태입니다. 전작에서 빛났던 사람들 중 절반은 그 좌절로 인해 자신의 길에서 멈추거나 주저앉은 상태고 나머지 절반도 각자 자기의 길을 간 상태죠. 그런 때 새로운 일이 들어오고, 그 새 일이 너무나 거대한 일이었기에 받아들일지 말지,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길이 과연 맞는지 아닌지 고민하던 미야모리는 '그래도 앞으로 나아간다'는 솔직히 진부하기까지 한 깨달음을 얻고 일을 착착 진행시켜 나갑니다. 

하지만 클라이막스 직전, 이래저래 잘 만들어진 작품이 결국 자신이 원하는 퀄리티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감독을 설득하고 스태프를 설득해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죠. [클라이막스가 너무 담백하다]고 말하면서요.

그리고 나서 그 새로운 제작과정은 생략한 채 극중극으로 먀모리가 만들던 클라이막스 부분이 상영되고 영화는 끝납니다. 소소한 후일담은 엔딩 크레딧과 함께 보여주지만 실질 먀모리의 이번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죠. 하지만 극중극 클라이맥스 부분은 잘 만들긴 했습니다만 사실 초반의 먀모리 뇌내마약 한계돌파씬(...)이랑 자체 오마쥬인, 신캐릭터랑 먀모리가 이번 극장판의 악역(이라 하긴 사실 별 비중도 없지만) 게페우 사장을 만나러 나가는 액션씬보다도 별 볼 거리는 없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꼴사나워도 자신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해]라는 말을 남길 뿐입니다.

전 이걸 보면서 제작진들이 자기들 스스로를 위해서, 애니메이션 업계에 투신한 자신들 스스로를 위해서 만든 극장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작과정의 힘든 일, 자신들에게는 일상 그 자체인 업계네타, 이런 것들 다 치우고 그저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자, 화려한 클라이막스가 아니라 다소 담백하고 밋밋하더라도 자신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선의 작품을 만들어서 보여주자. 이건 그런 우리들 스스로를 위한 물건이다 하면서요.

6. 이 생각을 하게 된 건 이번 극장판에서 유일하게 업계적, 제작적인 면에서 고민하는 부분이 드러난 게 바로 시나리오 씬이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과정들은 정말 물흐르듯이 진행되요. 아 인원 모으는 면에서 엔도 이야기도 포함이 되겠네요.

각본가인 마이타케는 중간에 진행이 막혀서 끙끙거리죠. 그러다가 안티클라이막스적인 해답을 찾아내서 시나리오를 완성시켜요. 하지만 결국 클라이맥스가 좀 담백하다는 게 스태프들의 생각이었고 다시 한 번 그것을 다시 만들지만, 그것을 관객으로서 지켜보는 우리들은 여전히 지나치게 담백한 진행과 안티클라이맥스적인 클라이맥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즉, 작중에서 일어나는 상황과 관객이 느끼게 되는 상황이 일치하게 되는 겁니다.

엔도 이야기의 경우도 한 번 작품이 끝나고 뿔뿔이 흩어진 스태프들을 다시 끌어모으고, 별로 내켜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의욕을 고취시키고 하는 등 스태프 자신들의 이야기처럼 보여지는 면이 있습니다. 또, 이번에는 이렇게 특정한 역할을 맡은 먀모리, 엔도, 감독 셋 정도를 빼면 특별히 카메라가 시선을 집중하는 캐릭터가 없습니다. 게다가 먀모리의 경우에도 이야기의 구심점으로서는 주인공이지만 카메라가 생각보다는 건조하게 먀모리를 비춥니다. 이번에는 특정 캐릭터나 그 캐릭터와 관련된 이벤트보다는 제작진 전체를 고루고루, 과하거나 모자람 없이 마치 다큐멘터리스러울 정도로 그 전체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마치 극장판을 만들기로 결정한 스태프들이 극장판을 만드는 자신들의 모습, 마음가짐, 그리고 결국에는 어딘지 모르게 여운을 남기면서도 어쩐지 아쉬운 것 같은 스토리와 클라이막스를 고스란히 이번 극장판으로 만들어냈다는 느낌을 전 받았습니다. 스태프들이 영화를 만들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그대로(아쉬운 부분까지) 가져온거죠. 극중극중극이랄까...이걸 좀 언어화하기가 어려운데, 이 작품은 제작진과 관객이 분리가 되어있다는 느낌을 전 못 받았어요. 제작진이 관객이고, 관객이 제작진인거죠.

제작진들은 자신들이 제작진임과 동시에 관객이고 그런 관객이 보고 싶은, 혹은 그려보고 싶었던 이야기를 제작진으로서 그려낸 것 같았습니다.

7. 그런 면에서 아까 언급했지만 먀모리 뇌내마약 분비씬이야 말로 이번 극장판에서 가장 열정과 노력이 들어간 구간 아닌가 싶어요. 거의 디즈니 스타일로 뜬금없이 뮤지컬이 시작되면서 먀모리가 여기저기 춤추고 캐릭터들이 나와서 뛰놀고 하니까요. 음, 정말 디즈니 스타일의 극장판이었습니다. 분위기 환기 겸 힘 빡 주고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 뒤 먀모리의 게페우 액션씬은 아 이건 그냥 미즈시마 감독이 중간에 여하튼 한 번은 넣는 쩌는 액션씬이군! 정도였다면(잘 만들긴 했는데 어쨌거나 분위기는 TVA에서 감독이 원작자랑 담판지으러 갈 때 그 분위기라 익숙했음) 중간의 그 디즈니풍 뮤지컬 씬은 통상적인 일본 애니에서는 거의 시도하지 않는 스타일이고 캐릭터들도 때려박은 것이 미즈시마 감독이 백퍼 나 이거 해볼래! 해보고 싶어! 한 거아닐까 시프요.

8. 여튼 적은 바와 같이 너무 제작진 스스로가 스스로를 위해서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어서 꼭 재탕하고 싶은 느낌은 아닙니다. 오히려 본다면 TVA나 다시 보고 싶네요. 하지만 TVA를 본 사람이라면 꼭 한 번은 볼만한 가치가 있는 그런 극장판이었습니다.

9. 아 근데 야노 센빠이는 언제봐도 너무 이쁨. 작중 시간에서 못해도 서른은 되었을거라는데 개좋음. 결혼은 먀모리랑 하고 연애는 야노 센빠이랑 하고 싶습니다.

추가. 시즈카 역의 치스가 하루카의 연기가 영 거슬렸는데 이게 감독이 의도한건지 아님 그냥 성우 본인 실력이 후달려서 그런건지 구분을 못하겠음. 특히 클라이막스에서 굉장히 표현력 딸리는 느낌을 받았는데 감독이 일부러 그렇게 지시를 했을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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